전력망의 미래

현재 그리드는 아직도 화석 연료가 주축이어서 미래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재생 에너지로 가동되는 그리드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띕니다. 에너지 저장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전기 발견 초기에는 전력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화석 연료를 이용하는 대형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 시설이 생기면서 광범위한 전력망(그리드)이 등장했고, 그 덕분에 멀리 있는 사람과 기업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력망 대부분이 아직도 20세기 화석 연료의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 세계는 화석 연료의 유연성에 기대어(즉 연료 연소를 늘리거나 줄여) 밤낮으로 달라지는 수요와 상황에 따른 수요 급증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1990년 월드컵 4강에서 잉글랜드가 승부차기 끝에 패하지 수천 만 명의 축구팬이 차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래려 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전력 수요가 역대 최대인 2.8GW 급증하였습니다. 100만여 개의 물주전자가 동시에 켜진 셈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영국 국립전력공사(National Grid)는 수요 급증 시 연료 연소를 늘리기 위해 스포츠 일정을 주시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스포츠 경기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화석 연료 중심의 그리드는 문제를 영속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기후 변화의 영향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캘리포니아에서는 폭염으로 주 전력망이 수요 급증에 대처하지 못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에어컨 사용을 줄이라는 권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남아공에서는 국가 전력망이 낡아 윤번 정전(rolling blackout)이 일상이 되었고,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같은 국가에서는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이유로 정전이 빈번해졌습니다.

날씨의 변덕

변화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수요량 보다 더 많이, 혹은 그리드 인프라가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생산할 경우(그리드 혼잡)에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워집니다. 전력회사에서는 전기를 저장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멈추고 청정 에너지원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각국에서는 재생 에너지원을 통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화석연료를 태워서 그 간극을 메우는데, 이는 지속 가능한 대책이 아닙니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게 단순히 재생 에너지를 늘려서 화석연료를 대체하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남아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상 이변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수급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인공지능형 그리드를 만드는 등 갖가지 조치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그리드에 에너지 저장 시설(양수발전, 배터리 저장장치, 그 외 수소 및 중력 저장 장치 등)을 늘려야 합니다.

그리드에 에너지 저장 시설이 있으면 공급이 수요보다 클 때 재생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드급 에너지 저장 시설을 갖춰야만 날씨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고 탄소 중립 그리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대규모 배터리 구축

현재 에너지 저장 시설은 대부분 양수발전 형태입니다. 높은 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잠재 에너지원인 물을 가둬 놓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규모 에너지 저장 시설로 그리드급 배터리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배터리 용량은 (지속 기간에 편차는 있지만) 16GW였는데, 이는 2020년 대비 60% 증가한 수치입니다. 배터리 용량은 현재 미국과 중국이 가장 크며, 다른 지역에서도 배터리 시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에너지 시장조사 기업 Rystad Energy에 따르면, 영국의 배터리 용량은 현재 2.1GW에서 2030년까지 24GW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영국은 방대한 해상 풍력과 태양광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여 2030년까지 에너지 저장 용량을 30GW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한편 호주에서는 2022년 말 기준으로 건설 중인 배터리 용량이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고무적인 성장세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파리 협약에 맞춰 에너지 부문의 탈탄소화를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IEA의 추산에 따르면 2030년까지 680GW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배터리 저장 용량이 44배로 늘어야 합니다.

불확실한 수익 모델을 비롯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리드급 배터리의 가격 하락은 고무적인 신호입니다.

Lightsource bp의 대응은?

Lightsource bp는 재생 에너지 그리드 통합 확대만으로 청정 에너지 전환이 완성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Lightsource bp에서는 현재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나오는 잉여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있을 때 방출하는 배터리 저장 단지를 건설 중입니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첫 배터리 단지의 가동에 들어갔으며 호주 풍력 단지 전체를 아우르는 그리드급 배터리 저장 시설도 계획 중입니다. 이와 더불어 미국과 유럽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Lightsource bp는 1990년 축구팬발 전력 수요 급증과 같은 사태가 또 한 번 발생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전 세계 사업장에 배터리 저장 시설을 꾸준히 구축할 것입니다.